영국의 경찰과 검찰은 상호보완 협력 관계 .박 현 호(경찰대 교수, 영국 포츠머스대 경찰학 박사)
영국의 경찰과 검찰은 상호보완 협력 관계
박 현 호(경찰대 교수, 영국 포츠머스대 경찰학 박사)
작년 12월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 시위 진압 도중 농민 두 명의 사망으로 인해 물러나게 되자 당시 경찰수사권 독립과 수사 서비스 혁신의 선봉장 역할을 하던 경찰 조직의 수장이 사라졌다는 탄식의 목소리가 매우 높았다. 지금은 이택순 신임 청장이 그 막중한 임무를 물려받아 혁신 추진의 고삐를 다시 조이기 시작하였고, 보다 신중한 전략으로 내실있는 수사권 현실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영국에서 경찰학 박사과정 연구를 하면서 영국의 수사경찰관들과 직접 만나 진지한 대화와 토론을 나눈 적이 많았다. 종종 영국의 검찰과 경찰의 관계는 검찰 측의 선진 외국사례에 대한 엉뚱한 해석으로 시민들을 호도하여 영국에서는 마치 1980년대 중반에 탄생하여 이제 겨우 20년에 불과한 역사를 가진 검찰이 경찰을 점차 장악하여 지금은 상당한 수준의 통제를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영국 검찰조직의 업무를 규정한 ‘범죄기소법’ 어느 조문에도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검찰이 경찰에게 구체적인 사건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상명하복적으로 수사상 지휘를 한다거나 경찰에서 입건 송치한 사건의 피의자를 재차 신문한다는 내용은 규정되어 있지 않다. 사실상 검찰에 의한 이중수사는 없다. 심지어는 폭행이나 강박에 의한 진술 등 자백에 의한 진술의 임의성이 의심스러운 경우조차도 유치장담당 경찰관에 의한 구금기록, 피의자를 진찰한 경찰공의(police surgeon)의 진료 기록 등을 참고 또는 검토할 뿐 담당 수사관이나 피의자를 직접 신문하지는 않는다.
범죄소추절차는 통상적으로 그리고 대부분 경찰에 의해 시작되며 때로는 경찰이 입건을 통해 기소절차를 시작하기 전에 국립기소청과 협의할 수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국립기소청 업무 혁신(Statutory Charging)을 통해 전국적으로 24시간 연중 무휴로 경찰에게 입건 관련 전화 조언 서비스(CPS Direct out-of-hours telephone service)를 실시하게 되어 경찰은 입건 송치 시 검사의 법률적 조언을 언제든 전화로 받아 볼 수 있게 되었다.
검찰직무규정(Code 3조)에는 영국의 경찰과 검찰의 관계를 상호 보완 및 협력 관계임을 명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국립기소청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검사에 대한 법적 지침(CPS Relations with the Police)에서는 “검사가 경찰에게 법률적 조언을 해줌에 있어서, 수사관의 역할을 하거나 경찰 수사 절차를 지휘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라고 명명백백하게 규정하고 있다(In giving advice to the police, you must not assume the role of investigator or direct police operational procedures).
나아가 최근에는 카운티 지역 단위에서 검사의 경찰에 대한 효율적인 입건 자문 서비스 수행이 검찰관서와 경찰관서가 지리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다는 한계로 인해 곤란을 겪게 되자 각 시, 버러, 디스트릭트 별로 경찰서 단위와 맞추어 지소를 설치하려고 각 경찰청과 협의를 거듭해 왔는데, 결국 범죄기소법 제3조와 검사직무규정 Code3를 근거로 이루어진 1998년 ‘글라이드웰 보고서’에 의해 경찰과 검찰 양 기관 간 기관협정이 체결되었고, 이에 따라 경찰서 건물에 형사사법공조팀을 설치하여 경찰과의 범죄기소를 위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체류하던 햄프셔카운티의 포츠머스 시에서는 공판과와 같은 한 개의 검찰청 독립 지소 사무소와 경찰서 내 합동 형사사법공조팀 사무소를 두고 범죄 기소 단계에서의 경찰과의 업무 중복 방지, 실무 조정을 통한 효율성 제고, 업무 관계 개선, 시간적 지연 감축, 커뮤니케이션 강화와 사법의 신속화, 범죄 피해자와 증인에 대한 서비스 개선을 강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 햄프셔경찰청 광역수사대의 수사관 존 에쉬워스 경위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면서 경찰과 검찰 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우리팀은 주로 포츠머스에서 활동하면서 강력범죄 수사를 하는데 범죄입건와 관련된 법률적 자문을 얻기 위해 경찰서 2층에 최근 마련된 형사사법공조팀의 검사에게 전화나 전자메일을 통해 서로 자주 연락하는 편이다. 때로는 매우 복잡한 사건의 경우 경찰서 공조팀 회의실에서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신중하게 토론을 한다. 이런 점들이 과거에 사무소를 서로 별도로 두고 지리적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던 시절에 비해 수사와 입건서비스에 있어 많은 시간적 절약과 편의를 주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검찰이나 일부 법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최근 검사가 경찰서에 파견되어 상주 근무하고 있는데 이는 “영국에서 검찰이 경찰에 대한 지휘를 강화하기 위해서이다”라는 주장은 큰 곡해임을 알 수 있다. 상하 관계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영국과 같은 수평적 협력에 의한 대국민 수사서비스 개선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수사권’이라는 용어에 대해 유감이다. 선진국에서는 수사상 권한을 파워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대외적으로는 주로 ‘서비스’라고 표현한다. 과연 ‘수사’라는 것이 특권집단들의 전유물인지 아니면 시민을 위한 봉사기능인지 먼저 고민해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