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 수사권 독립󰡑이란 대선공약 반드시 지켜야 -

표창원(영국 엑시터대학 경찰학 박사, 경찰대 교수)

  수사구조 개혁의 불꽃은 대한민국의 탄생과 동시에 타오르기 시작해 오늘날까지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 미국은 패전국 일본의 전체주의적 국가동원 체제를 해체하기 위해 검찰로부터는 수사권을 박탈하고 경찰은 지방분권화 하는 서구식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한국에서도 미군정은 ‘검찰은 기소, 경찰은 수사’를 분리 수행해야 한다는 법령(미군정법령 제20호 제1조 a, 1945. 10.30)을 제정했다.

검사들이 반발하자 검사는 수사를 행하지도, 수사에 관여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훈령을 제정했다(법무국 검사에 대한 훈령 제3호, 1945. 12.29).

그러나,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시에는 엄상섭 의원이나 한격만 검찰총장 등 주도자들이 하나같이 “이론상, 그리고 언젠가는 경찰은 수사, 검찰은 기소로 분리가 되어야겠지만 지금은 더 믿을 수 있는 검찰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부여해야한다”는 소위 ‘시기상조론’을 내세웠다.   이 ‘시기상조론’이 이후 52년간 지속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후 수사권을 둘러싼 검경간 다툼은 역대 정권의 통치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충실한 사병역할을 수행했던 경찰은 권력을 등에 업고 검찰을 무시하고 위축시키기 일쑤였다.

 박정희 군사정부 시절에는 ‘국가재건최고회의’에 법률전문가로 주도적으로 참여한 검찰이 헌법과 법률을 군사독재에 맞게 고치고 만드는 작업을 수행하면서 헌법에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규정해 ‘경찰수사권독립 주장의 싹’을 없애고 법무부 소속 직원은 검사이외에는 누구도 수사할 수 없도록 검찰청법에 규정했다.

 제5공화국 내내 시민의 항거와 학생운동을 온몸으로 막아낸 경찰은 권력의 총애를 입었지만 국민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수사권 독립을 얻어내지도 못했다.

 노태우 정권은 주로 ‘검찰권’을 이용해서 야당정치인들이나 재야운동가들을 탄압했고 기업들을 요리했다.

 검찰의 위세에 눌려 경찰은 제소리를 내지 못하고 지냈다. 수사권 독립 이야기만 나오면 고위 경찰간부들이 이런저런 혐의로 검찰에 체포되어 갔다.

 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중 후보는 ‘경찰 수사권 독립’과 ‘자치경찰제 도입’을 공약사항으로 내걸었다.

 검찰에 집중된 권력의 분산과 경찰의 분권화가 민주주의 정착의 전제조건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자 검경이 서로에 대한 비난과 폭로를 해대기 시작했고 결국 대통령은 양 기관에 ‘당분간 수사권 관련 논의를 중단하라’는 ‘특별지시’를 하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 역시 ‘경찰 수사권 독립과 자치경찰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참여정부 정권 초기 그 전개과정은 국민의 정부 때와 사뭇 달랐다. 정부혁신, 지방분권, 경제개혁과 사회개혁이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짜여진 로드맵에 따라 그야말로 획기적으로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여 “이제는 정말 달라지는구나”라는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사법개혁 역시 국민의 참여, 공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그 핵심을 이루며 급물살을 타는 듯 했고, 자치경찰제 역시 국회 법안상정 단계까지 이르렀다.

 ‘수사권 문제’도 역대 정권에서 보지 못한 ‘정면돌파’가 이루어지는 듯 했다.   ‘수사권 조정’이라는 대전제 하에 분쟁의 당사자인 검경이 ‘협의체’를 구성해서 하고 싶은 말과 주장을 다 했고 대통령은 양 당사자 간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통령이 직접 토론을 해서라도 결론을 내겠다”고 자신 있게 약속했다.

 형사소송법 195조와 196조의 개정으로 검-경이 ‘대등한 협력관계’로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루고, 그 결과 국민의 편익이 증진되고 피의자의 권리가 보장되며 피해자가 존중받는 ‘선진 한국’이 구현되는 출발점에 서 있다는 벅찬 감동을 느꼈던 많은 이들에게 최근 정부와 정치권의 주춤거림은 실망을 넘어 허탈감을 주고 있다.

  회갑을 맞은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조차 대통령은 수사의 “수”자 조차 꺼내지 않았다. 대신 ‘기관 간 권한배분’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쓰며 “상호 합의에 의해 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데 양보를 하지 않아 어렵다”는 자신감 없는 속내를 내비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전국의 경우들과 10만 경찰, 깨어있는 시민들이 포기하고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치권력의 ‘은사’로 얻는 반쪽자리 개혁이 아닌, 경찰과 시민의 단결된 힘으로 진정한 수사구조 개혁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역사의 준엄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검사가 법을 어기면 경찰수사를 받고 경찰이 인권침해하면 검찰의 처벌을 받는 ‘견제와 균형’을 가질 자격이 있다.

  언론과 정치권, 시민사회도 ‘검-경 간 밥그릇 싸움’이라며 상투적인 양비론에 안주하는 종전의 태도에서 벗어나 잘못된 역사가 뒤틀어 놓은 검경관계를 바로잡고 권력이 아닌 열린 시민사회의 감시와 통제 속으로 이들을 원위치 시키는 시대적 사명에 동참하길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