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자!

성 홍제(독일 튀빙엔 대학 경찰법 박사)

   최근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으로 법원-검찰-변호사계에 갈등이 유발되었다. 이러한 갈등에 현직 경찰서장이 23일 경찰 내부 통신망에 ‘검찰의 불법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법원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였다. 이보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 금태섭 검사는 한 일간지에 ‘수사받는 법’을 10회 연재키로 하고 지난 11일 첫 기고문을 실었다. 그 파장 역시 검찰 내부에서는 상당한 수준에 달했다.

 금태섭 검사는 피의자에게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변호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는 취지의 기고문을 실었을 뿐이다. 이미 여러 언론에서 분석한 것처럼 금태섭 검사의 기고문은 형사소송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진술거부권과 변호사 선임권을 강조한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청에서는 자체 회의를 열고, 금태섭 검사에게 기고를 중단하거나 제 2, 제 3의 연재를 실을 경우 미리 검토를 받으라고 지시를 했다고 한다. 법대생들도 알고 있는 진술거부권과 변호사 선임권을 검찰청에서 몰랐다고는 볼 수 없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을까?

  이용훈 대법원장은 지방법원을 순시하면서 ‘검사들이 밀실에서 받은 조서가 법정진술보다 우위에 설수 있느냐, 재판 모습을 제대로 갖추려면 수사기록을 던져버려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는 구두주의와 직접주의를 포함하는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검찰청내에 공판부가 별도로 설치되어 있는 점을 볼 때 검찰청에서 공판중심주의를 모른다고 해석할 수 없다. 그런데 왜 검찰이 반발하는 것일까?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변호사계가 법원이 아닌 검찰의 입장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변호사는 원래 법정에서 피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고, 무죄를 이끌어내려하는 반면, 검사는 피의자의 유죄를 입증함으로써 처벌을 하려는 존재로 상호 대립각에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어떻게 검찰과 변호사계가 동일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일까?

  이는 우리나라의 소송구조를 분석해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 형사소송에서는 수사기관이 작성한 서류의 가치가 당사자들의 법정 진술보다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서류재판에 가깝다. 그럼으로써 검찰은 서류상으로 거의 완벽하게 유죄를 입증할 수 있다. 물론 조서를 작성할 때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선임권을 고지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런 시스템상에서 사건조사는 형사부에서, 공판은 공판부에서 전담하게 되고, 사건조사검사와 공판검사가 일치하지 않아도 법정에서 피의자가 유죄임을 입증하는데 큰 하자가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공판중심주의로 갈 경우, 검찰은 법정에서 피의자가 유죄임을 입증하기 위해 증거뿐 아니라 피의자의 진술에서 모순점을 찾아내는 등 업무부담이 증가될 것임은 명확하다. 그래서 검찰은 서류재판을 고집하는 것이고, 이는 최근 법조비리로 기소된 전직 부장검사가 조사과정에서 협박 등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시인할 수 밖에 없었다고 진술하면서 공판정에서 공소사실을 부인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검찰의 이용훈 대법원장 발언에 대해 보여준 반응은 업무적 측면에서는 이해되나, 검찰이 인권보호기관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바탕으로 한다면 피의자 권리보호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없다. 더욱 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대법원장의 발언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한 검찰이 공판중심주의의 한 방편인 ‘증거분리제출제도’를 10월부터 전국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공판중심주의를 지향한다면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이 옳다고 수긍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변호사계 역시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변호사란 형사소송에 있어서 피고인에게 고용되어 법정에서 검찰을 상대로 명확한 사실확인․치열한 법정공방․객관적 증거제시 등을 통해 피의자가 무죄임을 밝히는 존재이므로 논리상 검찰의 반대편에 서야 되는데 검찰을 지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치열한 법정공방보다는 전관예우, 인맥 등을 통해 피의자를 변호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변호사계 역시 공판중심주의보다 서류재판을 지향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옹호하는 것은 어느 정도 수긍은 된다.

이러한 현행 형사소송구조를 바탕으로 한다면, ‘검사는 수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공판정에서 입증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서울중앙지법 이상훈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최근 발언은 의미가 있다. 미국에서는 TV 프로그램인 ‘CSI 마이애미’가 방영된 후에 검찰의 업무가 가중되었다고 한다. 위 프로그램을 보면서 배심원들이 객관적․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를 하고 이를 제시하지 못하면 무죄를 선언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검찰조직을 보면 공판부가 차지하는 비율은 9.6%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형사부, 특수수사부 등에 주력하고 있고, 이도 모자라 검사 밑에 입회계장, 검사장 소속하에 수사관 등을 배치해서 수사에 전념하고 있다. 이렇게 공판업무가 상대적으로 등한시되다보니 공판정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자료를 검사가 반박할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게 되고, 판사는 검사의 구형과 상이한 양형을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검찰은 공판정에서 치열한 법정 공방과 증거제시로 판사를 논리적으로 설득해야하는 어려운 공소제기보다는 수사에 주력하여 서류재판과정으로 이어지는 좀 더 쉬운 길을 가려하고, 법원은 이에 대한 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법조계의 갈등으로 볼 것이 아니라, 법조계 스스로 이제는 제 역할을 하자는 취지로 해석해야 한다. “법원은 공정한 판결을, 검찰은 공소제기를 통한 치열한 법정공방과 객관적 증거제시를, 경찰은 수사를” 담당하자는 뜻으로 해석해야 되지 않을까? 미국과 유럽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CSI 마이애미’와 ‘CSI 뉴욕’이 오늘따라 왜 이리 그리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