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논쟁」...무엇이 문제인가
구 종 태 < 행정학박사 , 전 대구지방경찰청장>
답은 멀리 있지 않는데
근간 경찰과 검찰 간에 수사권조정을 놓고 살벌할 정도로 분위기가 경색되고 있다.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문제는 역대 정권에서 여러 차례 논의되었으나 결론에 이르지 못하다가 노무현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으로 지난해부터 공개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검ㆍ경은 특별 기구를 만들어 1년이 넘도록 논의를 거듭하고,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협의를 계속하였지만 근본적인 견해 차이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또한 공청회를 열어 공개토론을 벌였지만 상반된 두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자 사회 각계각층에서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오기 시작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견해가 여론조사를 통해 표출되는 등 점차 그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회에서 형사소송법개정에 대한 두 건의 의원입법발의가 이루어지고 형사소송법개정입법공청회가 열리는 등 이와 관련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수사구조개혁의 형태로 결론이 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어느 분야이건 미래지향적으로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세계적 추세이다. 다만 수사구조에 대한 개혁과제를 수사권조정이라는 용어로 해당 기관 간에 논쟁을 벌인다는 것은 어찌 보면 주객이 전도된 느낌도 없지 않다. 수사란 범죄혐의를 명백히 하기 위한 수사기관의 활동으로, 수사의 궁극적 목적은 공공복리의 유지와 국민의 기본적 인권보장 및 실체적 진실발견에 귀결된다. 따라서 이는 기관 간의 권한에 관한 문제이기에 앞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의 신장과 실체적 진실을 발견을 통한 국민우선의 관점에서 논의되어야하는 것이 순서이다. 이 논쟁은 외국의 입법례와 형사소송법 제정당시의 시대상황을 검토해보면 해답이 어렵잖게 나올 것 같다. 문제를 한 쪽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한 발 물러서서 욕심을 버리고 찬찬히 살피면 답은 이미 그 안에 들어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논쟁...동전의 양면 같아
수사권조정논쟁에 대한 검ㆍ경의 주장을 간추려 그 타당성을 한 번 살펴보자. 경찰은 형사소송법 제195조와 제196조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전 근대적 노예규정이라고 주장한다. 이 규정은 검사만이 수사권한을 독점하고 경찰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할 수 있으므로 검사는 소추권자임과 동시에 수사주재자이고 경찰은 수사의 보조자로서 검사와 명령복종의 상하관계를 이루고 있다. 경찰은 검사지휘 없이 수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형사사건의 약 97%를 처리하고 있으므로 따지고 보면 경찰수사가 위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형사소송법을 현실과 맞도록 경찰수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수사상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관계를 상하복종관계에서 대등협력관계로 개정하자는 것이다. 경찰은 그간 부단한 조직개혁을 통하여 우수 인력을 확보 육성하고 수사 인력의 간부화를 추진하는 등 변화와 쇄신을 거듭하여 새로운 시대변화에 즉응할 수 있는 대비를 계속하고 있으므로 수사주재자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수사구조개혁은 일선 수사 현실을 법 규정에 맞도록 고치고, 책임과 권한을 일치시켜 국민에게 보다 나은 수사 서비스를 제공하며, 복잡한 수사절차에 따른 국민 불편을 최소화한다는 논리이다. 그리고 검사가 소추권ㆍ수사권을 독점함으로써 형사상 당사자 주의 원칙을 위축시키고, 권한이 지나치게 집중되어 부패와 비능률을 가져오며, 검찰 파쇼 화에 대한 견제장치가 없어 검찰권 남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검ㆍ경이 수사상 대등 협력관계가 된다고 해서 공소유지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는 것을 이웃 일본경찰을 비롯한 선진외국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경찰의 주장에 대한 검찰은 한 마디로 일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195조와 제196조를 개정하지 아니하고도 실무적 조정으로 불편해소가 가능하고, 수사진행에 전혀 문제가 없으며, 경찰이 아직 수사주재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하고,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으며, 막강한 15만 경찰조직이 수사권까지 갖게 된다면 경찰파쇼화가 우려된다고 한다. 또한 소추기관은 검사이므로 사법경찰관에 대한 수사지휘는 원활한 소추권행사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검ㆍ경의 논리를 국민에 대한 수사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한 발상으로 본다면 조금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국민의 기본인권을 보호하고 범죄에 대한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한 충정을 나무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ㆍ경의 상반된 견해가 행여 기관이기주의에 바탕 한 것이라면 경계해야 할 일이다.
각국의 수사제도는 나라마다의 여건과 특성에 따라 일정하지는 않다. 영미법계인 영국과 미국은 경찰이 수사주재자이고 검찰은 소추중심의 범위 내에서 수사에 간여하며 검경은 수사상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 형사소송법이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형소법을 계수하였지만, 일본은 2차 대전 후 영미법을 계수하여 검ㆍ경은 수사주재자로서 상호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륙법계국가 인 독일경찰은 독자적 수사개시권이 인정되고 있으며, 프랑스는 수사판사와 검사의 수사가 개시되기 전에 예비수사권을 부여하고 있음을 보면 우리 형사소송법의 수사구조는 우리 현실에 비해 가장 낙후한 제도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에 대한 검ㆍ경의 견해는 시각의 출발점이 서로 상이하여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논쟁의 허와 실이 무엇인지 검토해 보자. 첫째, 현실적으로 범죄수사의 97%를 경찰이 하고 있는데, 검사가 제한된 인원으로 모든 사건을 지휘할 수는 없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형사소송법 제196조는 사법경찰관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경찰수사권의 근거를 법률로 명문화하자는 것은 외국의 입법례를 들지 않더라도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는 당연한 일이다.
둘째, 경찰이 수사주재자가 되기에는‘아직 시기상조’이며, 자질이 부족하다는 검찰의 주장을 살펴보자. 8ㆍ15 광복이후 우리 사회는 좌ㆍ우익충돌 등 혼란이 정부수립 이후에도 이어졌으며, 6.25전쟁을 치루고 1954년에야 비로소 우리 형사소송법을 재정할 수 있었다. 당시의 경찰은 일반치안과 더불어 전국에 산재한 공비토벌이 우선 임무였음을 상기해 보면 우리의 치안여건이 얼마나 열악하였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미 군정청이 조선경찰을 뽑으면서 간부 82%를 일경출신으로 채용한 것이 일재청산의 기회를 놓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36년간의 일재폭정을 거친 당시 우리 사회의 인적자원에 대한 한계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30여 년 전 경찰간부를 포함한 고참 경찰관들의 학력이 심상소학교(초등학교)출신이 대다수였음은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경찰에만 한정되었던 것이 아니라 암울했던 우리의 과거가 남긴 비켜갈 수 없는 아픈 흔적인 것으로 형사소송법 입법 당시에 경찰의 자질이 문제되었던 점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경찰만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 환경과 국민의식ㆍ민주화ㆍ교육수준ㆍ국민소득ㆍ무역규모ㆍ국가위상 등 우리나라 각 분야가 모두 예전의 그것이 아님은 설명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간 경찰은 치안국으로 출발하여 치안본부로 승격되었다가 행자부 외청인 경찰청으로 독립하고, 우수한 인적자원 확보와 교육쇄신을 통해 치안서비스의 질이 향상되어 사회적으로 경찰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으며, 국내 60여개 대학이 경찰학과를 설치하여 우수한 잠재적 경찰자원이 양성되고 있다. 경찰청장은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용함으로써 투명성과 중립성을 검증받고 있는 사실을 보더라도 경찰을 수사주재자로 인정하기에는‘아직’시기가 아니라는 논조는 그 정당성을 잃는다. 그렇다면 그 시기란 과연 언재란 말인가.
경찰에서 사법고시합격자를 경정으로 채용한 후 여러 해 실무경험을 쌓아야만 경찰간부로서의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감안하면, 일선 검찰지청에 배치된 신참검사가 노련한 수사경찰에 대한 지휘를 썩 잘 할 수 있을 것인지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 같다. 자질론의 잣대는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제도가 만드는 것이지 특정기관의 구성원자체가 열등한 것으로 낮추어 보려는 시각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편견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어느 언론기관이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검찰보다 경찰의 신뢰도가 더 높게 나타난 것을 검찰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어재의 그 것이 오늘 그대로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셋째, 수사권과 인권문제에 대하여는 검ㆍ경 모두 자유스럽지 못한 과거를 갖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앞으로의 과제 다. 보다 발전된 제도로 바꾸어 수사의 효율성과 인권옹호의 기틀을 보완해 나가는 것이 개혁의 요체이다. 경찰이 수사주재자가 되면 국민의 기본권옹호에 문제가 발생하고, 검찰이 맡아하면 그렇지 않다는 논리는 이재 설득력이 약한 것이다.
넷째, 소추권과 수사권 독점으로 검찰 파쇼 화 우려와 15만 경찰이 수사권마저 갖게 하면 패해가 염려된다는 검ㆍ경의 상반된 주장은 사실 국민의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법무부가 검찰에 대한 감찰권을 이관해 가려는 움직임은 검찰에 대한 통제가 현실 제도적으로 미흡하다는 점에서 검토되었음을 감안하면 납득할 수 있는 문제이다. 경찰에 대한 우려 또한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나, 소추권 및 수사 종결권과 영장청구권을 가진 검사의 수사통제와 입법ㆍ사법통제 및 강화된 시민단체의 감시는 경찰의 파쇼 화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아울러 이러한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꾸준한 제도개선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다섯째, 수사에 대한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는 조직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국민에 대한 수사서비스의 질을 떨어트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경찰의 견해는 납득이 간다. 관할책임구역에서 중요범죄사건이 발생하여 이를 검거하지 못하면 경찰수사책임자 및 담당자는 신분상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허다하니 말이다. 무릇 형사는 사기를 먹고 보람을 위해 밤잠을 설치며 뛴다고 하지 않는가. 국회 행자위 소속 홍미영 의원이 서울경찰청의 수사경찰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4%가 검사의 부당한 수사지휘를 경험한 것으로 답하였다고 밝혔다. 이는 수사구조개혁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민심은 천심이라는데..
항간 시중에 나도는 이야기로는 검ㆍ경 두 기관의견의 절충안이 책임 있는 부서에서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개혁은 수사기관의 기득권 중심의 나눠 먹기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멀리 내다보는 국민을 위한 개혁으로 보기 어렵다. 참심제ㆍ배심제 도입 등 기본권보장을 위한 사법개혁이 추진되고 있는 차제에, 수사 상 명령복종의 검ㆍ경 관계를 상호 대등 협력관계로 수사구조를 개혁하여 복잡한 수사절차에 의한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수사 상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켜 수사제도를 우리현실에 맞도록 혁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민들은 경찰이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치안수요자인 시민들의 치안에 대한 욕구가 변화하고 경찰이 이에 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개혁은 어느 분야이건 국민을 위한 개혁이어야 성공할 수 있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최근 청와대가 야당국회의원이 주관한 형사소송법개정입법청문회에 참석한 경우회원과 일부 경찰관의 제도개혁에 대한 순수한 의견과 열기를 경찰의 단체행동으로 경고하고 이례적으로 이를 언론에 공개한 것을 보았다. 수사권과 관련한 지나친 열정이 오히려 국민에게 누가 될까 우려하는 순수함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뒷맛이 석연찮은 느낌 또한 지울 수 없다. 필자도 참석하였지만 경고할 정도의 무엇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검사 등 율사출신국회위원들로 포진된 국회법사위에서 검ㆍ경이 수사주재자로서 대등협력관계로의 형사소송법개정안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뒷이야기가 무성한 것을 보면, 아직 우리 사회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이치를 잘 깨닫지 못하는 탓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앞선다. 민심은 천심이라 하지 않는가. 국민을 위한 진정한‘수사구조개혁’이라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