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의 개혁 마인드를 촉구하며
박노섭(경찰대학교수, 뮌헨대학 법학박사)
9월 정기국회가 개정되었다. 경찰과 검찰은 지난 6월 이인기 국회의원과 홍미영 국회의원이 국회에 제출한 입법발의안의 통과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경찰과 검찰은 지난해 9월15일 1차 수사권조정협의체 실무회의를 시작으로 민간위원들이 참석하는 수사권조정자문위원회를 거쳐 9개월 동안 수사권조정에 관해 격론을 펼쳤다. 그러나 양측은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명확히 정립시킬 핵심의제에 관해서는 합의하지 못했다. 경찰이 이번 수사권조정회의에서 제시했던 안은 실무상 사법경찰이 수행하고 있는 수사권에 대한 법적인 명문화였다. 경찰은 형사소송법 제195조의 개정을 요구했는데, 이는 사법경찰관이 수사권을 수행함에 있어 형사소송법에 사법경찰관의 수사개시와 진행 대한 일반근거조항 없이 오직 형사소송법 제 196조의 검사지휘만을 근거로 하는 것은 중대한 입법 불비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형사소송법 195조은 검사의 수사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하는 규정이기 때문에 절대개정불가를 주장하였다. 현 형사소송법은 검사의 수사권한과 관련하여 검사의 수사임무(형사소송법 제195조)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사인력활용(형사소송법 제196조)과 수사실행권한(형사소송법 제199조에서 제245조) 및 수사종결권(형사소송법 제246조)을 규정하고 있다. 결국 현행 형사소송법상 검사가 수사의 주재자라는 용어는 이러한 권한을 합한데서 나오는 것이지 형소법 제195조에서 도출되는 개념이 아니다. 우리 형소법 제195조는 독일의 형사소송법 제160조와 유사하다. 독일 형사소송법 제160조(검사의 임무)는 검사에게 수사개시와 진행에 대한 법적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나, 이것이 절대불변이어서 개선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오히려 최근 2001년도 독일, 스위스 및 오스트리아 형사법학자들이 공동으로 제안한 형사소송법 개정초안 제150조는 ‘범죄수사기관은 범죄사실을 해명하고 장래 혹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범죄의 해명에 대비하여야 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그 입법취지에 범죄수사기관에는 검사 뿐만 아니라『경찰기관 및 그 공무원』이 포함되고 있음을 명시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형소법 제195조가 검찰의 주장과 달리 개정에 전혀 문제없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단적인 예이다.
사법경찰관이 실무상 전체사건의 97%를 검사의 지휘없이 독자적으로 수사하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형사소송법 제 196조는 범죄현장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사법경찰관이 인지하기 이전부터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할 것을 요구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따라서 사법경찰관의 수사개시와 진행에 관한 일반근거규정은 경찰의 수사권독립주장과 관계없이 최우선적으로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검찰은 수사권조정위원회에서 검찰이 수사지휘를 하지 않으면 경찰수사가 불법부당하게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수사권한이 남용되어 인권을 침해하거나 공소유지조차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현 참여정부가 국정철학으로 내세운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이다. 신뢰는 다른 권력의 불필요한 통제와 간섭을 자제하고 영역별 권한과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둠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다. 분권은 자율을 요구하고 자율은 책임을 요구하며 분권, 자율과 책임은 상호 연계되어 있다. 형사소송법이 탄생된 지 50년이 지난 지금 형사소송의 개혁방향은 국민사법참여를 통하여 그동안 법관의 전유물로 여겼던 유ㆍ무죄의 판단을 시민판사와 공동으로 분담하고자 하고 있다. 이러한 개혁방향은 수사절차에도 마찬가지로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 이영란 교수는『검사가 인권옹호기관으로서 수사과정에 대하여 적정절차의 준수여부를 감시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나 국민의 인권은 법적 지식이 특정기관에 강력한 지휘 감독권을 부여함으로써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각 수사기관들이 스스로 법의 적정절차를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영란 교수의 지적은 권한집중을 통한 타기관의 지휘ㆍ감독은 더 이상 자율과 책임을 요구하는 분권시대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특히 간과되지 말아야 할 것은 ‘공정한 법률의 감시자’는 스스로 집행자의 지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 검찰이 모델로 삼고자 하는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도 검찰은 ‘법률의 감시자’라는 지위에 충실하기 위해 자체 수사기관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건국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검찰은 수사활동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인권옹호를 위한 피의자의 법적권리를 제한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지적이 있다. 수사절차상 인권침해방지와 권한남용의 방지는 단순히 검사의 준사법적인 지위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법원 등 외적인 감시체제가 올바로 작동될 수 있도록 모든 수사기관에 의한 수사진행 절차가 투명화 됨으로써 비로소 확립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경ㆍ검관계는 상호견제를 통하여 수사권의 남용을 방지하는 한편, 상호간 협력관계를 형성하여 각 기관의 전문영역을 교류함으로써 수사활동의 실질적인 효율성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경ㆍ검관계에 대한 논의는 수사기관간의 상명하복관계에 따른 지휘ㆍ통제의 관점에서 벗어나 양 수사기관 모두 국민과 사법의 통제대상이라는 인식하에 진행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권조정위원회에서 경찰이 제안한 의제에 대한 검찰의 견해는 경찰 수사에 독자적 영역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점에서 매우 아쉬웠다. 이번 정기국회에선 경찰이 염원하는 수사권조정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