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보 학 (경희대 법대 교수)
국민의 정부 들어 자치경찰제의 도입논의와 맞물려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었던 경찰수사권 독립문제가 정권교체시기를 맞아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흔히 경찰수사의 현실화를 요구하는 수사권 독립문제는 검찰·경찰간의 단순한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되기 쉽다.
그러나 수사권의 검찰 독점으로 야기될 수 있는 모든 폐해를 경험한 국민의 입장에서 이 문제는 더 이상 양 기관간의 권한 싸움일 수만은 없다. 현재의 수사구조, 즉 검찰의 수사권 독점과 광범위한 재량권 보유, 검찰·경찰간의 상명하복식 종속구조는 검찰조직의 권력기구화 및 수사기관의 정치종속화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소수의 검찰이 독립된 거대조직 경찰을 지배·조정하는 것은 민주적 권력분립원칙에 반할 뿐만 아니라, 정치권이 검찰을 장악하고 다시 검찰을 통해 경찰을 장악함으로써 가장 독립적이어야 할 양 형사사법기관이 정치권의 '연장된 팔'로 전락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당연한 결과로 수사의 독립성과 사법정의가 의심받으면서 끊임없이 축소·편파수사 시비가 제기되고 있고, 수사과정에서의 강압수사로 인한 피의자인권침해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검찰·경찰간의 합리적인 수사권 배분은 양 기관간의 일방적인 지배·종속관계를 수평적·균형적 관계로 바로 잡음으로써, 권력기관 상호간의 견제·균형을 통한 권한남용의 방지, 수사의 독립성 확보와 사법정의의 실현, 피의자 인권보장 등 법치국가 형사사법의 기본이념을 실현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검찰이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반대하는 가장 강력한 논거인 '수사과정에서의 인권침해 방지'는 최근 서울지검 강력부에서의 피의자 고문치사사건으로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이 사건은 그동안 인권단체와 시민들이 강압적 검찰수사관행에 대해 품고있었던 의혹과 우려를 현실로 확인시켜준 사건이었다.
사실 검찰의 수사지휘가 피의자의 인권보장 장치가 된다는 것은 현실과 거리거 먼 주장이다. 피의자에 대한 가혹행위가 있더라도 수사지휘자인 검사가 묵인하면 아무 문제되지 않는 현구조하에서 오히려 피의자의 인권이 침해될 가능성은 더 큰 것이다. 그 보다는 경찰의 수사권을 독립시켜 경찰의 책임하에 수사가 진행·완결되도록 하고, 만약 가혹행위시비가 불거진 경우에는 이 부분을 검찰이 수사하여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 체제가 정착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경찰이든 검찰이든 피의자의 인권침해를 막고 적법절차준수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피의자신문 전과정에 변호인을 참여하는 제도가 정착되어야 한다. 수사단계에서 피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서는 수사당사자인 검찰자신이 아니라 변호인이 더 큰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시기상조론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경찰에 대한 자질시비도 더 이상 반대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본다. 경찰도 그동안 고시특채, 경찰대졸업생, 법대졸업생, 간부후보생 등 우수인재들의 유치와 양성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 과거와 같이 '자질미달' '역량부족' 등의 한마디 말로 경찰전체의 자질을 폄하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면 수사권의 독립으로 독자적인 판단과 책임 하에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더욱 많은 인재들이 경찰에 몸을 담게 되어 머지 않아 경찰구성원 전체의 자질과 사기가 향상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과 제도적 보완의 뒷받침 하에 모든 사건에 대한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 그리고 직접영장청구권과 부분적인 독자적 사건종결권도 인정되어야 한다. 반면 검찰은 경찰수사결과에 대해 검찰항고가 제기되거나 인권침해시비가 있을 경우 및 공소제기를 위해 부득이 필요한 경우에만 2차적·보충적 수사권을 행사하도록 하고, 평소에는 본래의 기능인 공소제기·유지임무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수사권이 검찰조직이나 경찰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수사권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고 국민의 안위와 복지에 봉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운용은 민주주의 원칙에 상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곳에 집중되어 있는 수사권을 나누고 분산시켜 남용의 가능성을 최소화하여야 한다.
검찰과 경찰간에 수사권을 합리적으로 배분하여 경찰을 1차적인 수사권 주체, 검찰을 2차적인 수사권 및 공소권의 주체로 재종하는 것이 그 해결방안이 될 것으로 믿는다. 경찰의 분발과 함께 새정부의 결단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