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홍세기
경찰수사권독립에 대한 역대경찰대학장들의 건의
경찰재임시 정예경찰간부 양성기관인 경찰대학장을 역임한 우리 역대 경찰대학장들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공약이행을 위하여 대통령직인수위 등 관계기관을 중심으로 경찰수사권독립문제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데 대하여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며, 향후 경찰과 검찰 등 유관기관의 긴밀한 협조와 국민들의 성원속에 법개정 등 제반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바람직한 수사구조가 탄생하기를 기대하면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현재 추진하고자 하는 경찰수사권독립 문제의 본질은 전세계적으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권한 배분의 부적정함과 비효율적인 현행 수사구조를 균형과 견제의 조직원리에 따라 선진적인 구조로 개선하자는데 그 핵심이 있으며궁극적으로는 국민편익과 인권보장 등 국민의 권익보호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형사사법시스템을 마련해 보자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에 저희 모두는 이번 기회에 경찰수사권의 독립이 반드시 이루어져서 국민들에게 원활한 수사서비스가 제공되어 지기를 강력히 희망하는 바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현재 우리나라의 수사제도는 일본제국주의의 그것을 모체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2차대전에서 패하자 재빨리 군국주의적인 제국헌법을 폐기하고 평화헌법을 채택하는 동시에 모든 법체계를 민주주의 체제에 걸맞도록 바꾸면서 형사소송법도 경찰을 제 1차적인 수사기관으로 삼는 등 일대 개혁을 단행하였으나, 우리는 식민지 때의 형사법제인 대륙법계의 형사법 체제를 유지하면서 영미법계의 당사자 주의적 요소를 가미하고 있으나, 검찰의 권한을 오히려 더 강화시키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결과, 일본은 그 악명높던 군국주의의 구각을 벗고 자유민주국가의 새모습으로 탈바꿈하여 뛰어난 치안혜택을 누리고 있는 반면, 우리는 국민에게 불편을 끼치는 각종 폐해가 초래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경찰수사권독립의 당위성과 필요성이 수없이 제기되었음에도, 그 때마다 경찰의 자질부족이나, 몇 십년간 사용해도 부족함이 없는 ‘시기상조론’ 등을 이유로 현재 불합리한 수사구조가 아직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라 하겠습니다.
일본에서는 현재의 우리보다 경찰의 자질이 훨씬 부족한 상태에서 경찰수사권 독립을 추진하여 검사와 경찰이 모두 수사주체로서 상호협력하는 합리적 수사구조로 성공리에 정착시킨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수사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이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경찰수사권독립을 반대하는 근거로 마치 독일이나 프랑스 등 대륙계국가도 우리나라와 같이 경찰이 검찰에 예속되어 있다거나 심지어는 우리나라보다 경찰의 독립성이 더 약하다는 주장이 제시되었으나 이는 부분적인 사실만에 터잡은 편협된 논리에 불과할 뿐, 그 내용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그 어떤 선진국도 우리와 같은 불합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독일이나 프랑스의 수사제도에 버금가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면 문제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또한 비록 우리의 제도가 그들과 다르더라도 우리의 실정에 맞고 국민편익과 인권보호 등에 기여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문제는 그러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선진국 수사구조에 관한 피상적인 이해를 가지고서 우리나라의 수사제도가 선진국과 유사하여 문제가 없으므로 개선이 불필요하다거나 선진국의 제도는 우리 실정에 맞지 않으므로 현행제도 유지가 불가피하다는 식의 주장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단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며, 우리 국민은 선진 수사제도의 과실을 향유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경찰의 자질이 경찰수사권독립의 전제조건이라 함은 본말이 전도된 주장으로서 경찰수사권이 독립되면 경찰자질은 향상되게 됩니다. 또한 수사는 항상 인권침해의 가능성을 안고 있으며, 경찰수사권독립을 제도화하고 있는 선진국 경찰도 인권침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설령, 경찰자질의 향상이나 인권보장이 수사권독립의 선결요건이라 하더라도, 그 동안 경찰에서는 고시특채, 경찰대학생, 간부후보생, 조사요원특채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우수인력을 확보해 왔고 일반공채도 학력이 향상되어, 적법한 수사권행사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었으며, 경찰의 인권의식도 충분히 함양되었으므로 마땅히 경찰수사권독립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들이 그동안 경찰수사권독립 논의시마다 불거져 나온 경찰자질부족과 인권의식미흡이라는 멍에를 벗기 위해, 경찰대학의 유능한 정예경찰간부를 양성해 온 20여년의 역사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과, 이제 우리경찰이 국민을 대하는 인식과 태도는 과거 법집행의 대상으로 보거나 권위적이고 군림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고자 하는 공복의 마음가짐을 견지하게 되어 경찰은 더 이상 폐쇄적인 권력기관이 아니라 진정한 국민의 봉사기관으로 자리매김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사회발전에 따라 언론, NGO, 시민단체, 사회단체 등 각종 인권감시장치가 많이 생겨나 경찰수사는 이제 투명한 유리 항아리의 내부를 들여다보듯 많은 국민의 감시속에 이루어지고 있어 인권침해의 위험성이 구조적으로 차단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수사권과 공소권 및 형집행권 등 각종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검찰에 대한 인권감시시스템 마련에도 사회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검찰을 위해서도 경찰수사권독립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동안 검찰권이 꾸준히 강화된 결과, 검찰이 1차 수사기관화되어 정작 검찰본연의 업무에는 전념하지 못하였으며, 최근에는 피의자 폭행치사사건까지 발생하였습니다. 검찰의 지나친 1차 수사기관화는 예단으로 인한 부적절한 공소권행사 등의 문제점도 우려됩니다.
경찰수사권독립으로 경찰과 검찰이 각각 자기 자리에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면 이 같은 부작용은 자연히 해소될 것입니다.
검찰요직을 두루거친뒤 법무부장관을 지낸 김종구 변호사가 어느 언론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검사는 대륙법계와 영미법계를 막론하고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다른 나라의 검찰과 달리 직접 수사기능을 거의 제한 없이 행사하고 있다’ ‘경찰이라는 1차 수사기관의 존재, 사법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의 존재와 성격, 검찰의 조직과 인력의 한계, 국가기관간의 권한의 분배 등을 고려할 때 수사권의 행사에는 그 범위와 한계가 설정돼야 한다’ ‘경찰작성 조서에 증거능력부여가 필요하다’ 고 주장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할 것입니다.
결국, 이제부터는 경찰수사권독립의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그만하고 그 구체적인 방안 마련에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특히, 최근의 지방분권화 추세에 따라 지방자치경찰제도 도입이 적극 검토되고 있는 시점에서 지방자치경찰제도에 걸맞는 민주적인 경찰수사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역대 경찰대학장들은 노무현당선자께서 경찰수사권독립을 공약하신 것에 공감과 존경을 표하며, 앞으로도 이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추진하시어 국민의 편익증진과 민주화에 기여해 주시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 바입니다.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003년 2월 20일
제10대 경찰대학장 홍세기 등 역대 경찰대학장 일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