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恥史) 속에서 사그라지는 搜査權調整 문제

 - 이제는 본질로 귀환할 때 -

양문승 박사(원광대학교 법과대학)

   대학원 학생들의 논문 심사 때 가장 곤혹스러운 주제 중의 하나가 수사권 조정에 관한 것이다. 비단 나 혼자만의 의견이 아니고 학과의 다른 교수들도 대부분 이러한 주제가 제기되면 약간은 난색을 표한다. 이유는 “참신하지 않아 논문으로서의 가치가 부족하다.”, “그동안 관련 논문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왔으나 결론은 없다.”, “새로운 버전의 이론이나 모형 탐색에도 궁하다.”, “선행 연구 논문과의 차별화가 가능하겠는가?”, “배경 이론에 대한 논의가 몇 십 년 전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주장할 수 있는 제안이나 결론 역시 거의 똑같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적용 논리와 이론도 좀 변해야 하는데 참으로 옹색하다.” 등등인데 관련 전공 교수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거의 유사한 입장인 것 같다. 이것이 학자들의 한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때로는 기분이 참담해지기도 한다.

  경찰 수사권 조정에 관한 문제는 장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대한민국의 건국 역사와 그 길이가 비슷하니 장구하다고 할 수 밖에 없고, 그 길고도 긴 5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변한 것이 없다는 것도 현대 국가들의 스피디한 발전 속도로 가늠해 보건데 기네스 북 감이다.     그 긴 역사 속에서 논의되었던 상세한 내용들은 학계 및 실무 종사자나 상식 있는 국민들은 익히 아는 바이니 여기에서 일일이 부언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최근 들어 선진국 따라잡기와 선진국의 제도 도입이 경쟁하다시피 이루어지는 판에 엉거주춤하게 전통 아닌 전통으로 뭉개고 있는 것도 아마 우리나라 수사권 관련 문제의 특성일 것이다. 아니, 변한 게 있긴 있다. 그래도 명색이 역사인데 조금은 변해야 할 것 아닌가? 시대의 흐름과 지배 담론을 반영하다 보니 명칭도 조금 변하긴 했는데 이제는 명칭조차 통일되지 않고, 명칭이 갖는 의미와 상징성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며 본질을 흐릴 대로 흐리고 있다. 수사권 독립이라는 용어가 한창 사용되다가 “독립이 뭐냐? 누가 누구로부터 독립한단 말인가?” 하며, 수사권 균점이라는 용어가 약간 순화된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같이 나누어 보자?” 이것도 좀 이상한 어감이었는지 요즈음은 수사권 조정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기타 몇몇의 표현들이 있지만 아류에 불과하고, 내용을 헤집어보면 똑같으니 오히려 혼란스럽기만 하다.

  한편 정체도 불분명하고, 이러한 용어를 꼭 검찰이나 경찰에 써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파쇼’라는 단어가 수사권 문제의 원조로 등장하며, 요즈음도 가끔 인구에 회자되기도 한다.      1954년 1월. 당시 형사소송법 제정에 앞서 개최한 공청회에서 국회 법사위 소속의 엄상섭위원이 “기소권을 가진 검찰에 수사권까지 주면 검찰파쇼가 우려되고, 중앙집권형 체제를 가지고 있는 경찰에 수사권을 주면 경찰파쇼가 우려된다. 그런데 우리 실정에서는 경찰파쇼의 경향이 더 센 만큼 수사의 주도권은 검찰이 가지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하고, 그 당시 국회 속기록에는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방향이 당연히 바람직하나 시대상황 등을 고려하여 향후 과제로 넘긴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하며, 정상적 논리에서 좀 비껴나 있는 파쇼같은 논리가 50년 넘게 검 ․ 경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고들 한다.

  당시의 자유당 정권 하에서 어쩔 수 없이 정치적 시녀 역할을 하여야 했던 경찰의 모습에 대한 시민들의 알레르기적 반응이 대변되었을 수도 있고, 당시의 경찰 자질론을 감안한다 치자. 아직도 우리가 파쇼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여 헤매고 있는 것인가? 국제화 ․ 세계화를 초등학생도 부르짖고, 선진정부, 선진검찰, 선진경찰의 어떠한 점이 우리 국민을 활력있게 하고 편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인지? 어떠한 점들이 미래의 복지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지? 를 국민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오늘날에도 과연 해묵은 논쟁들로 일관해야 할 것인지 우리 모두 반성해 보아야 한다. 검찰 편이 어디 있으며, 경찰 편이 어디 있겠는가?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방향과 내용이 수사권 조정의 범주와 내용들을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이다.

  그 동안 수사권 조정의 필요성으로 대국민 사법서비스 강화, 수사상 책임소재의 명확화, 수사의 효율화 도모, 피의자 및 피해자의 인권 보호, 국가형벌권의 기능 분립으로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정신 수호 등 교과서적 구호들이 단발적으로 거의 변함없이 되풀이되다가 이에 대한 논란이 대두되면 저장된 구호들의 나열로 협상테이블에 않을 기회와 의욕을 차단하고, 검 ․ 경 모두 긴장 국면에 접어들며, 서로 검치(檢恥)와 경치(警恥)를 끄집어내어 부각시키는 수순으로 일의 진행이 이루어졌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고, 그 와중에 상대적 약자 쪽의 희생양으로 이러한 논의가 일단락되곤 하였던 사실들을 국민들은 익히 알고 있다. 문제는 국민들도 이제 이런 해묵은 갈등에는 식상하며, 소위 말하는 ‘힘 겨루기’의 고정 레퍼터리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국민들의 갈증과 불신을 해소하지 않고는 그 어느 쪽도 좋은 소리 듣기는 요원하다. 여기에서는 정부도 빠질 수 없다.

  최근 형사소송법 개정을 위시한 일련의 사법개혁 조치들은 경찰과 검찰에게 그 역할과 사명, 그리고 효율성에 대한 새로운 변화 추동력을 요구하고 있으며, 국민들 역시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해묵은 논쟁으로 일관하는 변함없는 구태의 연속으로는 새로운 시대의 국민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다 같이 본질로 귀환하여 원리에 충실해야 할 때이다. 필요하다면 국민대공청회와 국민투표라도 하여 국민에게 선택하게 하고 어떤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국민의 판단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이 국민적 합의에 입각한 민주적 결단일 것이다.